수선화 피던 밤 (유기선 시) - 이윤선 낭송
학의 깃털만큼이나 새하얀
솜처럼 나의 가슴에 스며들던 그대의 따스한 입김이
수선화 피던 밤을 그냥 뜬눈으로 지새우게 했더란다
그리운 것과 매무새
촉촉이 비가 내리던 파란 잔디 위를
우산 없이 거닐던 오후에도
그대의 소식을 지루하게 기다리다
서너 잔의 엽차만 비운 채
야속함과 지루함과
그 어떠한 알 수 없는 느낌만이 남은 채
솜털 가슴 소녀처럼 그냥 순진함과
하얀 동녘 햇살을 기다리다 못내 아쉬워하며
도르르 굴러버리고만 은빛 이슬처럼
미움 따위는 생각지도 못하고
애타도록 애원하던 그대의 소원을 거절하듯
그날 밤을 내 마음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지 않을까
그렇다고 지금 와서
흐느낄 수 없는 후회 따위로 밤잠을 설친다 해서
저 멀리 희미하게 깜박이는 등댓불 모양
멀어져 버린 그 사람의 마음이
쉽사리 돌아설 수는 없지 않을까
지나쳐버린 일들일랑
한 가닥 추억 속에 묻어 버린 채
얼마 동안만이라도
내 머릿속에서 잊혀질수만 있다면
내년 봄 수선화 필 때쯤이면
하얀 꽃잎 속에 연분홍 홍조 띤 채
온몸 가득히 적셔질 수 있을 텐데
아무 후회도 미련도 없이